2024년 12월 30일 13:08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 주식창을 보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하곤 했다. 수익률은 일제히 파란불이었다. 종목 대다수가 국내 주식이었다. 내 돈이 아닌데도 속이 쓰렸다. 고려아연·이수페타시스·현대차증권 등 주주들의 뒤통수를 때린 종목들이 보이면 더욱 안타까웠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성공하기를 진정으로 바랐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밸류업 펀드 조성·세제 지원 방안 등 금융당국의 단기적 처방은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실증됐다. 연초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한 밸류업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습이다. 달리 말하면 상법 개정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걸 방증한 해였다.
상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은 성숙한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성장통이다. 당국이 분할·합병에 한정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제시한 건 재계를 비롯한 여러 입장을 절충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많은 소액주주와 외국인투자자가 원하는 상법 개정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 주식에 물려 있는 주주 혹은 국장(국내 주식시장)에 애정이 있는 이들은 상법 개정에 대해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이런 현실에 염증을 느낀 투자자들은 학을 떼며 국장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국장에 대한 환멸감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미국 주식 열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주의 진정한 이익을 도모하는 밸류업이 없다면 이 같은 머니무브는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주주를 최우선으로 삼는 주주자본주의가 정답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주주자본주의는 왕도가 아니다. 지난 2018년 별세한 미국의 법경제학자 린 스타우트는 자신의 책 ‘주주 자본주의의 배신’에서 주주 가치 신화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주주자본주의가 경영자로 하여금 단기 주가 부양에 매몰케 하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를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이를 반성한 선진국은 수년 전부터 고객·직원·지역사회 등을 고려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주자본주의마저 이루지 못한 상태다. 이런 현실을 바꿔 보려는 시도 중 하나가 상법 개정이다. 상법 개정은 최종적 대안이 아닌 출발점에 불과하다.
경영 위축을 우려하는 재계한테는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퇴로를 터주면 된다. 이미 미국은 여러 판례에 기반해 경영판단의 원칙을 정착시켰다.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의 윤태준 연구소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상법 개정을 전제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찬성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시 강조하건대 이것은 돌이킬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거대한 패러다임이다. 2025년은 이런 움직임이 결실로 이어져 주식창을 빨갛게 물들이는 해이길 바란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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